서귀포 셋알오름 일제고사포진지, 바람 속에 남은 전쟁의 흔적과 역사

서귀포시 대정읍의 들판 너머, 바람이 유난히 세차게 부는 오후에 제주셋알오름 일제고사포진지를 찾았습니다. 하늘은 푸르렀지만 구름이 빠르게 흘렀고, 오름 능선 위에는 오래된 콘크리트 구조물이 낮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거칠게 남아 있는 벽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만든 해안 방어진지로, 오름의 지형을 따라 포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주변은 조용했고, 바람이 콘크리트 틈새를 통과하며 내는 소리가 마치 과거의 메아리처럼 들렸습니다.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전쟁의 흔적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대정읍 들녘 끝자락에서 만난 오름

 

셋알오름 일제고사포진지는 대정읍 상모리에서 산방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셋알오름 포진지 주차장’을 입력하면 좁은 농로 끝의 작은 공터로 안내됩니다. 차를 세우고 오름 능선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포진지 입구에 닿습니다. 오름 아래에는 감귤밭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좁은 흙길이 이어집니다. 곳곳에 ‘국가유산 제주셋알오름 고사포진지’ 안내 표지판이 있어 길을 헤맬 일은 없었습니다. 오름을 오르는 동안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풀잎 사이로 흙냄새가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산방산의 윤곽이 멀리 보이며, 바다와 육지가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길이었습니다.

 

 

2. 거친 바람 속에 남은 전쟁의 흔적

 

정상 부근에 도착하자 콘크리트 벙커 형태의 고사포진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표면은 세월에 닳아 거칠었고, 군데군데 균열이 생겨 있었습니다. 내부로 들어가면 어둡고 습기가 맴돌지만, 천장에는 당시의 철근 구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포대의 방향은 남쪽 바다를 향하고 있어, 적의 접근을 감시하기 위한 위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안쪽 벽에는 오래전 병사들이 남긴 듯한 흔적이 보였고, 입구 주변에는 해풍에 부식된 철판 조각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콘크리트 냄새와 바람이 섞여 묘한 긴장감을 주었습니다. 지금은 새들이 들어와 둥지를 틀었지만, 그 안에 남은 공기는 여전히 차갑고 무거웠습니다.

 

 

3. 지형을 활용한 전략적 구조

 

셋알오름은 해발 150미터 남짓의 낮은 오름이지만, 주변의 평야지대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습니다. 일본군은 이 지형을 이용해 해안 접근로를 감시하고 포를 설치했습니다. 고사포진지는 오름의 경사면을 따라 세 곳에 분산되어 있으며, 일부는 지하 벙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벽면의 시멘트 조성물에는 당시 제작 방식의 특징이 남아 있었고, 입구 위에는 환기구가 원형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빛이 거의 들지 않아 손전등 없이는 내부를 자세히 보기 어렵지만, 천천히 살피면 포가 배치되던 받침대와 탄약 저장 공간의 윤곽이 여전히 선명했습니다. 인공물임에도 오름의 곡선을 그대로 따라 만들어져 자연과 묘하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4. 현재의 보존 상태와 관람 환경

 

포진지 일대는 별도의 입장료 없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오름 초입에는 간단한 안내문과 주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국가유산 고사포진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내부 진입은 가능하지만, 일부 구간은 붕괴 위험이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비가 온 뒤에는 내부 바닥이 젖어 미끄럽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모자를 벗는 것이 좋습니다. 벙커 주변은 잡초가 정리되어 비교적 깔끔했으며, 벤치 한두 개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전기 조명은 없기 때문에 해질 무렵 방문은 피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관리가 지나치게 인위적이지 않아, 오히려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5. 오름 탐방과 함께 즐기는 주변 코스

 

셋알오름을 둘러본 후에는 인근 ‘산방산 탄산온천’이나 ‘용머리해안’을 함께 방문하기 좋습니다. 오름에서 차로 10분 거리로, 고사포진지의 거친 풍경과는 또 다른 평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송악산 일제동굴진지’는 같은 시기 조성된 군사시설로, 셋알오름과 비교해보면 전쟁 당시의 전략적 배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점심이나 휴식을 원한다면 대정읍 중심의 ‘모슬포항 식당가’가 가까워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습니다. 탐방 후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니 묘한 대비감이 느껴졌습니다. 과거의 무거움과 현재의 평화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감정이었습니다.

 

 

6. 관람 시 주의사항과 느낀 점

 

셋알오름 포진지를 방문할 때는 반드시 운동화나 등산화를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름 능선이 미끄럽고 바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내부는 어둡기 때문에 휴대용 조명을 챙기면 도움이 됩니다. 여름철에는 벌레가 많고, 겨울에는 해풍이 매서워 옷차림에 신경 써야 합니다. 역사적 장소이므로 내부 벽면에 낙서나 흔적을 남기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조용히 걷다 보면 바람과 흙, 그리고 돌의 냄새가 묘하게 어우러져 전쟁의 흔적을 체감하게 됩니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비극의 잔재를 담은 거울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서면, 평화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마무리

 

셋알오름 일제고사포진지는 제주의 자연과 역사가 겹쳐진 현장이었습니다. 바람과 흙 속에 여전히 남은 철과 콘크리트의 냄새가 전쟁의 그림자를 말없이 전해줍니다. 오름의 부드러운 곡선 속에서 인간이 남긴 흔적이 얼마나 거칠고 무거운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고요함이 그 상처를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능선 위에 걸린 석양빛이 콘크리트 벽을 비추며 붉게 물들었습니다. 그 빛이 마치 ‘기억하되, 다시 반복하지 말라’는 말을 건네는 듯했습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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